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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 후에 남겨진 것들

독일영화를 본 건 아마 처음일게다. 어느날 문뜩 코끝을 시큰하게 해줄 그런 영화가 보고 싶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나고 왁자지껄한 영화보다 조금 우울하고 잔잔한 영화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것도 어른이 되었다는 증거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사랑한 후에 남겨진 것들"

영화의 한글제목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원제보다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한 평생을 함께 지내온 인생의 반려자가 어느날 운명을 달리했을 때, 남은 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적 변화를 조금은 과장되지만 오히려 더 이해하기 쉽도록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후지산이 바라보이는 어느 강가에서 세상을 등진 아내를 그리며 부토를 추는 주인공의 모습은 아내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에 대한 고통 그 자체였다... 부토 무용수가 꿈이 였던 아내를 헤아려 주지 못한 책망과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자신에 대한 실망이 그림자와 손끝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된다.

우리는 존재의 소중함과 무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 존재에 익숙해져가면 갈수록 더욱 더 가슴에서 희미해져만 간다. 머릿 속 아니 가슴 속 깊은 곳으로 감춰버려 쉽게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든다. 주인공의 아내는 주인공에게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존재가 사라지면 우리는 새차게 흔들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나를 지탱하던 그 존재의 사라짐으로 인해 고통받고 힘겨워한다. 그것들 다시 찾기 위해 발버둥 치고 이리저리 해매고 다닌다. 가슴이 미여지도록 울부짖고 쓰러져 땅을 기다 지쳐버리고 만다. 그렇게 눈물만 흘리며 존재를 그리워 한다.

사랑이 끝났다는 말은 존재가 사라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허망함과 안타까움뿐이며 그리움은 바로 그런 감정의 산물이 되어 기억속에 자리잡는다.

by fullc0de | 2009/07/01 12:03 | 잡생각 | 트랙백 | 덧글(1)

비켜가지 않는 슬픔...

주말까진 괜찮았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믿지 못해서 였을까.. 그래 믿고 싶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 들리는 소리 모든 것이 그 분의 죽음을 내게 인식시켜 주고 있지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우울했다. 하지만 비통하지는 않았다. 슬프지만 믿지 않았기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월요일.. 꿈 같은 반전은 없었다. 여전히 해는 떳고 아침 출근을 위해 만원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터덕터덕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희미하게 나타나는 기억... 그 기억이 나를 강요한다. 사실이라고 말한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슬픔때문이 아니라고 애써 외면했다. 다만 월요일병이라고 치부해버리며... 그렇게 친구들과 메신져로 수다도 떨고 이리저리 음악도 듣고 마음을 가다듬어 일을 해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헛수고다.
그 분은 떠났고 난 남았다.
결국, 그렇게 슬픔이 홍수처럼 밀려오고야 말았다.





by fullc0de | 2009/05/25 17:05 | 트랙백 | 덧글(1)

밤톨같이 귀여운 조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가슴으로 느끼다.

어제 그러니깐 일요일에 막내조카 돌잔치가 있었다. 형내식구들이 사는 곳이 내가 사는 곳과는 많이 먼 곳에 있어서 가보지 못했다. 내 형제가 둘 밖에 없어서 난 조카들에게 하나 밖에 없는 삼촌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조카들에게 좀 더 가깝고 재미난 삼촌이 되고 싶었다. 항상 친구같아서 형이나 형수한테 혼나도 나만은 달래주며 어를 수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주지 못해서 언제나 미안하고 안타깝다.

지난 주에는 어린이날도 끼여 있어서 조카들에게 조그만 선물을 보내줬다. 이 녀석들이 이제는 많이 커서 직접 전화로 요구사항을 늘어놓는 통에 뭘 사달라고 한건지 헷갈릴 정도 였지만 그래도 물어물어 원하는 것 몇 개 골라 보내줬더니 토요일날 전화해서 연신 감사합니다를 외친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귀엽던지... 너무 귀여워서 그 동안 잘해주지 못한 것들이 한꺼번에 올라와 목이 매였다. 삼촌의 정이 어찌 부모의 그것보다 크겠냐마는 그래도 밤톨 같은 녀석들이 삼촌~ 이라고 불러주는 모습에 가슴이 다 아리는 건 어쩔수가 없다.

예전에는 사무실에 아들, 딸 사진을 올려놓고 보며 흐믓해 하는 선배들 모습을 볼때마다 조금은 궁금하기도 했다. 무슨 감정일까? 저게 부모자식간의 느낌일까? 저렇게 보고 있으면 힘이나나 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다. 아.. 부모라는 사람들은 자식의 웃는 모습.. 아니 그냥 그렇게 살아 숨쉬는 자체만으로도 무한한 행복을 느끼고 큰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너무 오랜만에 지난 주말 집에 내려갔더니 아버지, 어머니가 100일 휴가 나온 아들 맞이 하듯 기쁘게 맞아주셨다. 약간의 어벙벙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아버지와 나즈막한 뒷동산에 등산 아닌 등산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들의 이야기야 으레 정치, 경제, 사회 이야기로 빠지기 쉽상이지만 그래도 좋았다. 아버지와 이야기 한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웃고 계셨고 나도 웃었다. 공기가 너무 맑은 탓만은 아니였다.

조카가 생긴 후로는 아버지의 그 마음과 미소를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된 것 같다. 아버지에게는 내가 꿈틀거린다는 게 행복이고 의미라는 것을...

그냥 그렇게 은은하게 그리고 길~게 아버지, 어머니 곁에서 행복이 되어드리자고 다짐했다.

by fullc0de | 2009/05/11 12:01 | 잡생각 | 트랙백 | 덧글(1)

시간이 흐르면 기억도 희미해진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도 희미해진다.
어릴적 기억들도 점점 아련해지고 폭풍과도 같던
기억들도 순풍이 되어 어깨를 스쳐지나간다.
흐려진 기억을 추억이라 부르며 미소지을 수 있는 것도
다 기억의 흐려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 속에서 조용히 자리하고 있는 애뜻한 추억 하나쯤은
누구라도 가지고 있지 아니하랴.

나 역시 그런 추억하나쯤은 가슴 속에 새기고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아픈 상처를.. 누군가로부터 애닳는 그리움을..
가슴속에 내 자아가 미처 자리잡지 못할 무렵부터
그렇게 나자신을 흔들어 놓았다.
사랑의 아픈 상처가 쉽게 사라지지 않듯
추억이 되 가슴아래 새겨진 후
지워지지 않고 내 앞에 나타난다.

길을 걸을 때
밥을 먹을 때
의자에 앉아있을 때
언젠지 모를.. 정말 문뜩 내 옆에 앉아
내 코 끝을 간지럽히는 추억이 되었다.
그리곤 외로워진다.

기쁜 추억이든 슬픈 추억이든 알알이 모여
가슴속에 맺히면 외로움이 된다.
그렇게 추억이 된 기억을 짊어지고 외로움을
견디며 오늘도 살아간다.







 

by fullc0de | 2009/05/08 14:33 | 잡생각 | 트랙백 | 덧글(0)

앵커의 의미

anchor라는 단어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그 중 뉴스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진행자를 anchor라고 한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을 주로 진행자나 사회자 즉, 영어로 host라고 하는 반면에 뉴스는 anchor(이하, 앵커)라고 한다. 앵커라는 단어를 두고 잘 곱씹어보면 왜 앵커가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앵커의 명사적 뜻을 보면..

n.
 1. 닻
 2. 고정장치
 3. 의지할 힘이 되는 것


그렇다. 앵커란 새로운 사실(news)에 대한 단순한 전달을 넘어 잘못된 사실에 대한 비판과 비평을 통해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뉴스프로그램을 보는 이로 하여금 왜곡되지 않은 정보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다. 즉, 거칠고 험난한 파도 속에서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난파되지 않도록 굳건하게 잡아주는 닻과 같은 역할을 해야한다.

이번 MBC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의 하차에 속상해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으로써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 날이 갈수록 후퇴하는 표현의 자유속에서 MBC뉴스데스크는 권력에 대한 통쾌한 한방과 흔들리지 않는 힘을 보여줬건만 그런 대변의 창구 마저도 빼앗겨버린 듯하여 가슴이 시리다.

이제 어디로 가서 무엇을 이야기 해야하는가?  닻을 잃어버린 조각배마냥 머릿 속이 흔들려 매스껍다.

by fullc0de | 2009/04/14 12:10 | 잡생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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